기억의 본질은 패턴의 서열이다. 패턴은 반복적으로 만나는 사건과 사물의 변하지 않는 공통 요소이며, 지각 경험의 범주화된 형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사물과 사건의 변하지 않는 관계를 기억한다. 관계는 맥락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맥락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그래서 맥락적 관계를 단어라는 상징으로 기억하며, 의미 기억은 모두가 상징으로 표상된다. 사물들의 공간 배치의 상대적 관계와 사건 구성 요소의 변하지 않는 시간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다. <애국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동'과 '해'의 소리 세기의 상대적 관계 그리고 '해'와 '물'이라는 발음 세기의 상대적 관계를 기억하는 것이다.
사건 기억의 특징은 순서에 따라 배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배운 지식의 대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태정태세문단세'로 연결된 왕명은 평생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역순으로 단어를 기억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의미 기억은 언어로 표현되는 기어이며, 언어는 음소, 단어, 문장이 순서에 따라 배열되기 때문이다. 의미 기억의 바탕은 순서다. 사건의 시간적 순서가 인과관계를 드러내며, 사물의 공간적 관계가 장면을 구성한다. 그래서 일화 기억은 사건과 사물의 인과적 맥락과 사건의 장면을 기억한다. 시간과 공간 지각에서 변하지 않는 상대적 관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하여 불변 표상으로 범주화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사과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전형인 범주화된 사과를 기억 계층 구조의 위쪽에 저장하는 것이다. 하향적 처리 과정에서는 전전두엽의 개념 영역에서 추상적 단어가 선택되어 뇌 연결망을 자극하여 하향적 신경 자극 흐름이 생긴다.
정서적 감정과 결부된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생생히 떠오른다. 감정 기억은 회상할 때마다 조금씩 각색되어 재구성된다. 이처럼 기억의 일생은 지속적인 탈맥락과 재 맥락 과정이다. 기억은 최초로 부호화된 후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구성요소의 일부가 사라진다. 일상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은 자동적으로 즉각 기억되며,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 장면의 흐름이 일화 기억을 구성한다. 일화 기억은 절차기억보다 견고하지 않아서, 생생하고 온전한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기억이 회상될 때마다 조금씩 구성요소가 탈락한다. 맥락의 구속력이 약한 부분이 탈맥락 하여 기억의 일부가 사라져도 기억의 핵심적 의미는 정확하다. 즉 완전하지는 않지만 왜곡되지도 않는다. 반면에 회상되는 과정에서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다. 회상되는 시점의 감정과 몸 상태에 따라 기억은 변형되고 재구성된다. 기억의 회상은 매 순간 재구성되어 새로운 맥락을 만든다. 따라서 기억의 재 맥락화 과정은 원래의 기억을 왜곡시킨다. 목격자가 본 사건 현장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될 수 있다. 그리고 감동적인 순간은 재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억이 생성될 때와 비슷한 정서적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억의 내용은 탄생부터 소멸까지 맥락이 점차 변화한다.
기억 형성의 시작은 지각된 대상이 배경에서 분리되는 패턴 분리 과정이다. 기억 요소들이 맥락으로 엮여 이야기를 만드는 기억이 일화 기억이다. 일화 기억은 생성, 성장, 소멸이 존재하는 구성적 과정이다. 하나로 만들어진 기억은 다른 기억과 분리되어 자신의 고유한 일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기억의 덩어리는 그 구성 요소 하나만으로도 인출 단서가 되어 완전한 기억 패턴을 불러올 수 있다. 패턴 분리와 패턴 완성은 일화 기억의 핵심 단계다. 패턴 분리는 해마치상회에서 새로운 자극에 의해 촉발되는 과립 세포의 성체 뇌세포 생성과 관련된다. 성체 신경세포의 지속적 생성 덕에 인간은 평생토록 새로운 사건을 기억할 수 있다.
성인 뇌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신경세포는 새로이 생성되지 않는다. 출생 전후에 왕성히 분열하여 숫자가 늘어난 뇌신경세포는 3세 이후부터는 급격히 자살하여 사춘기에는 유아기 뇌 세포 수의 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해마 치상회를 구성하는 과립 세포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생성되는 성체 신경세포 신생은 놀라운 현상이다. 뇌과학자들은 줄기세포처럼 생성된 이 과립 세포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전자현미경으로 자세히 분석한 결과 새로 생성된 과립 세포들은 새로운 일화 기억을 부호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억이란 현상에는 심각한 딜레마가 있다. 대뇌 신경세포의 수가 늘어나지 않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려면, 즉 새로운 기억을 기존 기억에 연결하려면, 기존의 기억 연결망에서 기억의 일부를 지우고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해야 한다.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려면 옛 기억의 일부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생성되는 과립 세포가 새로운 기억을 담당하는 현상이 밝혀지면서 이 딜레마가 해결되었다. 옛 기억의 패턴이 붕괴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이 신생 과립 세포에 의해 기억 간 간섭 없이 옛 기억에 추가되는 것이다. 해마 치상 회의 신생 과립 세포의 패턴 분리가 새로운 기억 형성의 핵심과정이다.
사건의 패턴이 구별되어야 기억들이 서로 혼선되지 않는다. 기억들은 분리되어 구별된 형태가 되어야 서로 결합할 수 있다. 기억은 해마의 피라미드 세포에서 맥락에 맞게 연결된다. 해마에서 형성되는 맥락을 갖는 일화 기억은 사건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를 다시 만나면 전체 기억을 자동적으로 회상하여 기억 패턴을 완성한다. 패턴 분리와 패턴 완성은 해마 치상 회의 과립 세포와 CA3피라미드 세포의 상호연결에서 생기는 기능이다. 정신 분열증은 조현증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뇌 연결망의 상호작용 조율에 이상이 생긴 증상이다. 조현증의 일부 원인은 해마치상회의 과립 세포가 새롭게 생성되지 못해 패턴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패턴 완성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조현증은 패턴 완성이 과잉되어 기억 인출 단서와 관계없는 단어들이 맥락 없이 무제한적으로 인출, 발음되는 것이다.
일화 기억은 해마의 기억 회로에서 부호화된 후 감각 연합 피질에 저장되며, 감각 연합 피질에서는 감각 경험 기억이 중첩되면서 반복되는 자극이 공통 패턴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이 바로 지각의 범주화다. 익숙해진 사물이다 사건의 범주 기억이 형성된 후부터는 이와 유사한 자극이 신피질까지 전달되기 어렵다. 이미 저장된 패턴은 시상에서 피질로 전달되지 않고 새로운 감각 입력만 시상에서 피질로 전달된다. 그래서 익숙한 시각 자극은 무의식적으로 처리된다. 익숙한 감각자극처럼 습관화된 운동은 대뇌피질에서 의식 수준의 각성을 유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미 익숙한 내용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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