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동물과 기억상실증 환자는 어쩌면 영원한 현재적 존재일 수 있다.
기억 인출과정과 지각은 모두 구성적 과정이다. 구성적 과정은 재구성될 수 있다. 지각에 환각이 있듯이 기억 회상의 재구성도 잘못될 수 있다. 구성적 신경처리 과정은 단계별로 신경회로가 생성되어가는 과정으로, 감정 상태에 따라 회상되는 기억이 달라질 수 있다. 의식적 기억 회상은 서술기억에서만 가능하며 절차기억은 기억 인출과정이 의식되지 않는다. 기억은 대뇌의 다양한 곳에서 생성되고 저장된다. 기억은 크게 서술기억과 암묵기억으로 구분되는데, 서술기억에는 사실기억과 사건기억이 있다. 사건기억은 일상생활의 기억으로, 시간과 장소 정보가 항상 결합되어 있다. 사건은 일화기억의 핵심 내용이며, 일화기억의 저장과 인출의 용량이 큰 이유는 일화기억은 새로운 사건이면 즉각 자동적으로 기억되며 일부 단서로도 전체 기억이 자동연상으로 회상되기 때문이다. 사건을 구성하는 장소와 시간 정보가 일화기억을 인출하는 단서로 작동한다.
감각은 감각 수용판에서 감각 자극 에너지의 변화가 전압파로 전환되면서 시작된다. 시각의 망막, 청각의 유모세포는 이차원 평면 구조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러한 감각세포들의 배열을 감각판이라 한다. 감각 자극은 0.5초 이하 동안 지속되어 감각기억을 형성한다. 감각입력의 폭주하는 흐름에서 주의를 끌 만한 자극은 의식되어 작업기억이 된다. 감각입력의 폭주하는 흐름에서 주의를 끌 만한 자극은 의식되어 작업기억이 된다. 작업기억은 대략 1분 이하 동안 의식되다가 주의에서 벗어나면 곧장 잊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감각입력은 작업기억에서 더 강한 주목을 받게 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장기기억은 사실기억과 절차기억으로 구분되며, 사실기억은 사건기억과 의미기억으로 구분된다. 사실기억을 일화기억이라 한다.
신체의 기억인 암묵기억은 기억 인출과정이 의식되지 않는 운동절차와 관련된 기억이며, 사실기억은 인출 과정이 의식되고 언어로 표현할수 있다. 사건기억은 어떤 장소에서 언제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기억으로 반드시 장소와 시간 정보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사건기억은 이야기의 주된 재료가 되므로 일화기억이라 한다. 새로운 사건에 대한 기억은 해마에서 자동적으로 즉시 기억된다. 해마 기억의 핵심은 '새로움'이다. 색다른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새로운 일화기억은 해마에서 임시로 저장되었다가 대뇌피질로 이동하여 장기기억이 된다.
대뇌피질에 새로운 경험기억이 축적되면, 경험들의 공통점들이 점차 의미기억으로 전환된다. 사건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 원래 사건기억의 꼬리표인 '시간'과 '공간'정보가 사라지고 다양한 경험의 공통점이 지각되어 사건의 의미가 된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의미기억의 출발점은 사건기억이다. 의미기억이 사건기억의 공통점을 범주화하면서 서서히 생겨났다면, 사건기억이 만들어지는 해마가 손상되었을때도 새로운 의미기억의 학습이 가능할까? H.M 환자의 경우에서 해마없이 대뇌피질에서 의미기억이 생성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 밝혀졌다. H.M 환자는 좌우 반구의 해마와 편도체를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정보를 반복해서 입력했을때 약하지만 의미기억 학습능력을 보였다. 해마를 제거하기 이전에 학습한 의미기억의 활성은 정상적이며, 해마를 제거한 이후는 점화기억과 절차기억은 작동하지만 새로운 의미기억의 생성능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해마 없이는 새로운 일화기억이 생겨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의 축적으로 생성되는 의미기억은 매우 약해진다. H.M의 경우 사건에 대한 일화기억이 생성되지 않아 일상생활은 주로 이저에 형성된 의미기억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H.M의 내면세계는 해마를 제거한 1953년, 27세 이전의 세계에 고정되었으며 그후 수십년간의 놀라운 변화에 대한 의미기억은 거의 생성되지 못했다. 기억이 새롭게 생겨나지 않으니 당연히 이전 기억으로만 살아가야 하고, 현재는 항상 해마를 제거한 바로 그 해에 고정되어 있다. 현재가 지속적으로 기억으로 편입되면서 과거가 되고, 미래는 지속적으로 현재화되어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흐름이 시간의식을 생성한다. 그런데 현재이 경험이 해마에 의해 기억으로 고정되어 과거의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시간의 화살은 정지된다. 현재가 흘러가지 않고 '영원한 현재'로 고정되면 미래는 사라진다. H.M환자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었으며, 그날그날을 과거에 만들어진 의미기억을 바탕으로 82세까지 살아갔다.
개나 고양이는 경험기억 형성이 약해서 기억을 바탕으로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고, 감각입력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행동한다. 동물과 꿈속의 주인공은 일화기억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환경 입력에 반응하여 반사적 행동을 한다. 우리의 자아는 과거 경험기억을 지속적으로 인출하면서 형성되는 자전적 기억이다. 해마의 작용으로 현재의 경험기억이 지속적인 과거를 만들지 못하면 뇌가 만드는 내면의 시계는 멈추고,자아도 약화된다. 과거, 현재, 미래는 기억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현상이고, 기억이 멈추는 순간 현재라는 한 점으로 응결된다.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과거의 마지막 포인터가 바로 우리의 현재이며, 현재는 시간과 공간에서 움직이는 우리 행동 궤적의 한 점이다. 움직임의 궤적이 정지되면 과거는 자라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고정된 채 미래의 기약이 없다. 그래서 현재를 기억해야 과거가 생겨났고, '기억된 현재'인 과거와 아직 실현되지 않는 '잠시후의 현재'인 미래가 출현하게 된다. 인간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불안해 보이는 미래를 끊임없이 추측한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인간 지능 발달의 원동력이다.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는 H.M은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무한대로 지속되는 자연의 시간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을 의식하면서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기 위해 시간을 반복되는 단위로 개념화했다. 즉 무한 직선적 시간을 반복 가능한 원의 형태로 바꾸어 인식하면서 반복되는 시간 주기에 생활 패턴을 결합시켰다. 계절마다 반복되는 축제의 날을 설정하여 시간의 무한한 지속이라는 감당하기 힘든느낌을 유한한 삶속에 조절해 넣을수 있게 된 것이다.
무한히 펼쳐진 공간에 대한 막막한 느낌도 동서남북의 방향을 설정하여 내면에 세계의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극복했다. 무한히 펼쳐져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뇌가 생성하는 반복되고 방향이 정해진 내면 세계로 전환하여 인간은 자연에 적응해갔다. 반복되는 현상이 현실이 되며, 반복되기에 현실은 예측 가능해진다.
꿈과 동물과 기억상실증 환자는 어쩌면 영원한 현재적 존재일 수 있다. 과거 기억을 반영한 현재 입력 처리과정은 미래를 예견하게 한다. 전전두엽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인간에게 항상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불안과 걱정은 미래를 예측하는 전전두엽 예측 기능의 산물이며, 불안한 미래는 인간 정신 활동의 본질적 요소다. 불안은 우리를 현실의 안주에서 벗어나서 행동하게 만든다. 그러한 미래에 대비하는 행동들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동물로 만들었다. 시간 의식과 예측 능력은 해마의 일화기억에서 생겨난 놀라운 선물이다. 해마의 기억하는 능력과 전전두엽의 예측하는 기능덕에 인간은 현재의 구속에서 벗어나 미래라는 가상의 세계를 출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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