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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

기억과 해마

by 착한부자 Jun 2022. 9. 26.

 

기억이란 놀랍고 미묘한 현상이다.

다양한 종류의 기억이 복합적이고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에 기억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우선 기억은  '수동적 자동 기억'과  '능동적 숙성 기억'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흔히 기억을 반복적인 노력이 필요한 정신적 과정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코 노력하거나 집중하지 않아도 대규모의 기억이 즉각 형성되는 수동적 자동 기억이 있다. 바로 일화기억이다. 반면에 전화번호,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은 집중해서 반복해야 겨우 암기되는 능동적 숙성 기억이다. 

의미기억처럼 숙성 과정이 필요한 기억은 지금은 기억에 성공했지만 며칠만 지나도 대부분 잊힌다.

자동 기억인 일화기억은 하루동안 내가 한 일과 만난 사람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 낮 동안의 행동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되지만 반복해야만 기억되는 능동적 기억은 대뇌신피질에서 형성된다. 이는 이미 저장된 이전의 기억과 새로운 기억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대뇌신피질의 기억은 범주화된 형태로 저장되며 주로 언어로 표상된다. 

상자에 물건의 이름을 붙이듯이 의미 기억은 각각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인출된다.

개별 기억의 내용 전체가 하나의 이름으로 대표되고, 뇌 작용은 이 이름이란 단어의 연결로 생각을 만든다.

그래서 생각은 언어를 통한 기억의 연결이며, 실제 행동 선택을 준비하는 운동 계획 단계다. 운동 계획은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는 발음되지 않는 말하기다. 대뇌신피질에서 기억은 대부분 언어로 표상된 범주화된 지각이며, 분류된 범주 그 자체가 바로 의미가 된다. 그래서 단어는 의미 기억의 핵심요소다.

 

감각, 지각, 기억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뇌 구조는 해마와 대뇌신피질의 상호연결이다.

아래 <그림>에는 기억을 형성하는 파페츠회로가 나타나있다. 해마에서 뇌궁을 통해 유두체로 입력되는 신경로는 청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두체에서 유두시상로를 통해 시상전핵으로 입력되며, 시상전핵에서 내낭전지를 통해 대뇌피질로 방사되는 신경섬유다발은 점선으로 나타나 있다. 대뇌신피질에서 대상회를 통해 해마로 입력되는 지각 정보는 초록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파페츠회로의 대뇌피질의 연결

해마의 기억 회로와 파페츠회로의 연결은 외측과 내측내후각뇌피질에서 치상회⟶해마암몬각3⟶해마암몬각1 연결을 통해 해마로 입력되며, 해마의  출력은 해마지각을 통과하여 해마 출력 신경섬유다발인 해마술을 형성한다. 

해마술은 뇌궁이 되어 유두체로 입력되고, 유두체⟶유두시상로⟶시상전핵⟶내낭전지⟶대상회로 이어지는 신경회로가 형성된다. 대상회와 신피질은 상호연결되어 해마에서 형성된 기억이 대뇌신피질에 저장된다. 시상부와 연결된 중격핵에서 기억 형성 파페츠회로가 서로 연결되어 기억 회로와 감정 회로가 서로 연결된다. 결국 감정적인 사건은 기억이 강화된다.

 

의미기억 형성은 반복된 경험의 공통 패턴이 언어로 구분되는 과정이고, 시간이 소요되는 능동적 숙성 과정이다. 

그래서 의미는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이며, 의미가 풍부한 생각의 속도는 실제 행동 속도보다 느리다. 생각에는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든다. 더 효과적인 행동 선택을 위해 더 많은 기억을 연결하고 행동의 결과까지 예측하는 과정이므로 생각은 빠르지 않다. 이러한 행동 선택은 전전두엽에서 일어나며, 기억을 인출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비교, 추론, 예측, 판단을 하게 된다. 행동 선택이 중요한 만큼 비교추론, 예측, 그리고 판단의 과정은 전두엽에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반면에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기억과정이 있다. 바로 해마에서 형성되는 일화기억이다. 일화기억은 사건의 즉각적 기록이며, 의미기억은 사건의 내용을 평가하고 음미하는 숙성 과정이다. 감각 경험 자극은 0.5초 이하의 감각적 잔상을 남긴다. 1초 이하의 시각, 청각, 촉각 작용이지만 중요한 정보는 의식적으로 지각된다. 감각 자극이 짧은 시간 동안 의식화되는 현상을 감각기억이라 한다. 감각기억으로 지각된 외부 정보는 초 단위로 연속되면서 작업기억을 구성하며, 수 초간 지속되는 작업기억은 바로 우리의 '현재' 그 자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매순간 우리는 옆 차를 주의하고 신호등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운전하는 절차운동 기억이 즉시에 출력되면서 모두 의식된다.

 

 

 

매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행하는 일련의 행동이 바로 작업기억이다.

절차기억은 즉시에 무의식적으로 인출되지만 작업기억은 모두 의식화된다. 사실 인간 의식의 핵심적 구성 요소는 작업기억이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감각기억이 중요한 정보라면 전두엽은 의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여 그 감각 자극을 곧장 작업기억으로 전환한다. 작업기억을 촉발한 감각 정보는 두 갈래로 나뉘어 처리된다. 감각을 지각하는 과정 그 자체는 사건의 경험이 되고, 지각된 사건의 내용은 의미기억으로 발전한다.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은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과정으로 해마에서 일어나지만, 의미기억은 반복되는 유사한 경험에서 공통점이 추출되어 범주화되는 과정으로 대뇌신피질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해마 기억과 신피질 기억으로 구분해서 기억을 살펴보아야 기억의 본질이 드러난다. 해마 기억의 핵심은 경험의 즉각적 기록인 반면에 의미기억은 공통점을 추출하는 범주화가 핵심이다. 해마 기억은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처리되며, 새로운 감각 정보가 해마 피라미드세포(pyramidal cell)를 흥분시켜 장기전압강화 현상을 만든다. 해마치상회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과립세포들이 새로운 감각입력에 반응하여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신생과립세포에 의한 기억 형성 과정의 시작 단계가 패턴 분리이며, 과립세포와 CA3 피라미드세포의 신경연결이 매 순간 입력되는 감각경험 신호를 다른 자극과 구분하여 시냅스 발화가 생긴다. 패턴 분리 과정은 해마 기억의 출발점이며, 이 과정동안 다른 자극에 의한 간섭이 차단되어야 한다. 해마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새로운 기억의 형성은 다른 자극에 의한 간섭이 없어야 가능하다. 기억에 실패하는 주요 원인은 바로 간섭 현상이며, 감각입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집중이 자극 간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고 있어도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시간동안 모든 감각입력은 기억되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좋아하게 되고 오래 보아야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은 기억의 핵심과정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했던 생각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도 그 생각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과 꿈은 전혀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 자유 연상이므로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간섭의 차단으로 패턴 분리가 선명해져 사물과 사건이 뚜렷해지는 과정이다. 꽃이든 사람이든 자세히 보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해마에 각인된다. 오래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의미가 서서히 대뇌신피질에 자리 잡게 되고, 다른 기억과 상호연결되어 조그마한 자극으로도 그 사람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해마에서 기억 형성은 신생 과립 세포에 의한 패턴 분리과정이고, 기억 인출은 CA3에서 일어나는 패턴 완성과정이다.

단편적인 자극만 주어져도 전체 기억이 회상되는 과정인 패턴 완성은 인간 기억의 놀라운 특징으로, 대뇌신피질에서 일어나는 기억의 자동 인출과정이다. 특별함을 기억하는 해마 기억과 공통점을 추출하는 신피질 기억으로 기억이 이중 체계로 발전한 배경에서 진화의 효율성과 융통성이 느껴진다. 해마는 주변환경에서 새롭고 중요한 감각 자극을 자동적이고 즉시에 기억한다. 반면에 대뇌신피질은 해마에서 형성된 일화기억에서 반복되는 공통 기억 요소를 의미기억으로 서서히 범주화한다. 사건기억이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 함께 연결하여 저장한다. 그래서 의미기억이 발달하지 않으면 사건을 분류하는데 서툴러서 개별 사건 전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일화기억의 세부사항은 사라지지만 공통된 내용이 살아남아서 이야기의 핵심 주제만 기억에 남아 의미기억이 된다. 인간은 새로운 자극에 본능적으로 집중하고 기억하게 되므로 새로운 탐험과 도전이 인간의 본성이 된다. 인간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출발은 새로움을 기억하는 해마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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